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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끌린 첫 문장_<양과 강철의 숲>_미야시타 나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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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끌린 첫 문장_<양과 강철의 숲>_미야시타 나츠

어니언 (국내산) 2021. 7. 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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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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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쓰면서 기억이 난 책입니다.

 

 위 링크에서도 적은 내용이지만, "양과 강철(의 숲)"은 피아노를 뜻합니다. 그리고 위의 글을 쓰면서 언급했던,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해머(면양 털로 만든 것)가 현을 두드려 소리가 납니다."라는 문장을 쓸 때,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주인공은 피아노 조율사로 나옵니다. 그 주인공이 피아노(조율)에 매력을 느낀 그때부터 조율을 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잔잔하고 첫 문장부터 저를 사로잡아버렸던 책입니다. 

 

 

 

 

 이 책은 4~5년 전에 읽은 책으로 꽤 오래되어서 내용 자체는 위에 언급한 정도로 밖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우연히 읽게 되었지만, 책 제목을 보고 상당히 의아해했던 책 중 하나입니다. "양"과 "강철"의 "숲", 먼저 "양"과 "강철"이라는 단어가 전혀 연결되지 않았고, "강철의 숲" 또 한 상당히 이질적이었습니다. 그도 그런 것이 "강철"은 철보다 더 강한(단단한) 물질인데, 숲은 나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 철과는 상당히 다르며, 거기에 동물인 "양"은 대체 왜 튀어나오는지... 이 모든 것이 "이질異質"이라는 단어가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결이 상당히 다른 이 것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것은 바로 "피아노"였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말도 안 되는 제목이 너무나도, 환상적으로 잘 어울린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살면서 많은 책들을 읽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부끄럽지만, 얼마 되지 않은 읽은 책들 중 저에게 있어서 가장 강렬했던 첫 문장은 이 책;<양과 강철의 숲>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매력적인 문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첫 문장이 유명한 작품들이 있고 저 또한 몇 권 읽어봤지만, 스스로 "찾았다"라고 생각된 문장은 이 책이 처음이기 때문에 더 애틋한 것 같습니다. 다른 책들은 학교에서 배우거나 혹은 이미 명언처럼 알려져 있었거나, 아니면 읽었을 때 별생각 없었는데 알고 보니 유명한 문장이었다던가, 또 다 읽고 나서 늦게 깨닫거나 하는 것처럼 감흥이 바로 오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읽는 그 순간 바로 책에 빠져들어 버렸습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책을 산 어느 여름, 늘 그때만큼 더웠던 일요일 점심에 가까웠던 때, 동네 서점엔 팔지 않아 조금 먼 곳까지 가서, 계산을 하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쯤엔 거의 다 읽어갔고, 다 읽어갈 그 쯤 책장이 넘기는 게 너무나 아쉬워하는 마음과 빨리 다 읽고 싶다는 마음이 교차해 잠깐 덮었지만, 역시 안 되겠어서 다시 펼쳐 읽으니 오후 3~4시쯤으로 기억합니다. 더운데 에어컨 리모컨도 찾는 것도 까먹은 채로 읽었던 책입니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됩니다.

 

 森の匂いがした。秋の、夜に近い時間の森。風か木々を揺らし、ざわざわと葉の鳴る音がする。夜になりかける時間の、森の匂い。

 숲 냄새가 났다. 가을, 밤에 가까운 시간의 숲.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나뭇잎이 바스락바스락 우는 소리를 냈다. 밤이 되기 시작한 시간의 숲 냄새. 

 

미야시타 나츠 <양과 강철의 숲>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어떤 매체든 가장 잘 와닿는 것은 '자신에게 그와 같은 또는 비슷한 경험이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저는 이 첫 문장을 읽자마자 바로 끌렸습니다. '숲 냄새가 났다.' 후에 따라오는 '어떤 모습의 숲'인지 '어느 시간 때의 숲'인지, 그 숲 냄새가 맡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외할머니 댁의 좁은 앞마당 너머로 숲이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할머니 댁이 마을 끝에 있는 산의 약 중턱 아래 깨쯤이라 산이였겠지만, 마루에서 보면 마치 커다란 숲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따라오는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소리와 '가을, 밤에 가까운 시간'은 추석에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을 때 느꼈던 냄새가 코끝에서 알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소설이든 첫 문장은 가장 중요합니다. 그 후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서술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의 첫 문장은, 화자(주인공)가 '숲'에 대한 감각이 다른 이들에 비해서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숲 냄새'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그중 정확히 '가을'이라는 계절, 그것도 '밤에 가까운 시간'이라는 것을 압니다. 화자는 그 냄새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고, 반대로 말하자면 모든 계절의 밤에 가까운 시간을 그리고 모든 시간대의 숲 냄새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숲'은 주인공에게 있어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는 공간입니다.

 

 자신의 고향(홋카이도의 산골 숲)이자,

 직업(피아노 조율; 양과 강철의 숲)의 계기와 이상향의 숲,

 그리고 숲(고향)을 나와 콘크리트의 숲(도시)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인생의 숲  

 

 이상향을 가지고 들어간 미지의 숲은 익숙지 않아 헤매고, 다치고, 성장하며, 고민하고, 찾아가는 과정들이 녹여져 있습니다. 

 

 

 

 

 

 森の匂いがした。秋の、夜に近い時間の森。風か木々を揺らし、ざわざわと葉の鳴る音がする。夜になりかける時間の、森の匂い。

 숲 냄새가 났다. 가을, 밤에 가까운 시간의 숲.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나뭇잎이 바스락바스락 우는 소리를 냈다. 밤이 되기 시작한 시간의 숲 냄새. 

  

 책의 첫 문장 이후의 다음 문장에서는, 현재 화자가 있는 곳은 '숲'도 아니고, 근처에 '숲'도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지금 주인공이 있는 위치는 어디인가 하고 궁금함에 빨려 들어가게 합니다.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보면 조금 따분할 수도 있을 정도로 너무나도 '우리 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평화로운; 직업과 인간관계 등이 얽혀있는,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중간중간의 문장들이 사소하게 아름답고, 생각보다 많은 교훈들이 내포되어있습니다. 사소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작가의 문체가 시각적이든 청각적이든 후각적이든 글로 눈앞에 있는 듯 그려놓았습니다. 그런 작은 아름다움의 기쁨과 함께 교훈과 조율사라는 흔치 않은 직업에 대한 내용이 재밌었습니다.

 

 이런 작가의 세심함; 문장, 그리고 '조율사'라는 직업을 조사한 흔적들로 재밌게 읽은 이 책을 많은 분들이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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