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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박] 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_③ 누구의 집일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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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박] 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_③ 누구의 집일까?

어니언 (국내산) 2021. 9. 3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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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박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비공식 준말입니다. 저로 비롯하여 많은 분들께서 '국박' 혹은 '국중박'이라고 부릅니다.

 

 제 전공은 서양화입니다. 최대한 아는 내용과 약간의 검색을 통해 알게된 사실을 잘 버물려 최대한 간단한 설명과 본 전시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아무리 감상을 이야기 한다 한들 실제 보러 가시는 것을 더 추천드리겠습니다.


 이전 글:

[국박] 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_② 청동에 금도금_당시 유행이었을까? (tistory.com)


 

 

  박물관 내 설명]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추가: 인왕仁王은 인왕산의 인왕이며, 제색霽色은 비갠 후의 산의 모습을 말함. 제霽는 '비갤 제'자이다.)

 

정선 (1676-1759)

조선 1751년    *영조 27년

종이에 먹

국보 제216호

 

 속속들이 잘 아는 인왕산의 특별한 순간을 남기다

 긴 장맛비가 갠 후 인왕산은 사뭇 다르다. 장맛비로 바위들은 물기를 머금어 묵직해 보이고 수성동과 청풍계에 폭포가 생겨났다.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난 겸재 정선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인왕산을 늘 보고 자랐다. 76세의 노대가 정선은 자신의 눈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인왕산 구석구석을 자신감 있는 필치로 담아내 최고의 역작을 남겼다. 

인왕산의 비 갠 경치, 겸재. 신미년 윤 5월 하순(윤 5월 25일경, 양력 7월 말에 해당)

 

 

 관내 설명 2]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신이 <인왕제색도>를 왜 그렸는지 알려주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선의 제작의도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평생지기 이병연(1671~1751)의 쾌유를 기원한 그림이다.

 이병연의 병세가 나온 상태를 비 개인 인왕산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2. 후원자 이춘제(1692~1761)의 저택을 그린 그림이다.

 인왕산 동북쪽에 있던 이춘제 저택을 그린 다른 그림 속 담장 모습이 <인왕제색도> 집 뒤 경관과 유사하기에 이춘제 집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3. 비가 개인 순간의 흥(상쾌함)을 나타내고자 정선 자신의 삶의 터전을 그린 그림이다.

 정선은 경상도 하양 현감을 마치고 1727년에 옥인동으로 이사했다. 자신의 집과 뒷산인 인왕산을 애정을 담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내에 있는 집은 누구의 집일까요? 이것에 대한 의견은 관내에 설명되어있는 대로 기록이 없습니다. 흔히들 알려진 내용은 1의 내용입니다.

 

 

1. 평생지기 이병연*(1671~1751)의 쾌유를 기원한 그림이다.

 이병연의 병세가 나온 상태를 비 개인 인왕산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있다.

 

 *사천 이병연은 당대 유명 시인으로,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그렸던 것처럼 이병연 역시 진경시詩; 국내 곳곳을 여행하며 그 지방의 기후, 풍물, 지형, 인심과 더불어 경승을 찬미하는 시를 지어내 정선과 함께 시화 쌍벽을 이룸.

 

 이러한 이유가 나온 배경에는 겸재가 그림 오른쪽에 시기(신미년 윤 5월 하순**)를 적어 언제 그렸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승정원일기>에서 윤 5월 19일부터 25일 오전까지 7일동안 장맛비가 내렸다는 내용이 있어 시기가 일치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평생 절친이었던 이병연이 와병중이였기에 이 해석은 '평생 우정'이라는 감동이 있어 더 호소력이 생기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 가설은 같은 시기 외엔 다른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병연의 집 위치는 그림의 집 위치와 멀다는 점이 있습니다.

 

**신미년 윤5월 하순: 윤5월 25일경, 양력 7월 말에 해당

 

 

 

2. 후원자 이춘제(1692~1761)의 저택을 그린 그림이다.

 인왕산 동북쪽에 있던 이춘제 저택을 그린 다른 그림 속 담장 모습이

<인왕제색도> 집 뒤 경관과 유사하기에 이춘제 집을 그린 것으로 볼 수있다.

 

 이 가설의 근거로는 이전 이춘제가 <옥동척강>, <서원소정>, <서원조망>등에 나오는 이춘제의 서원 위치가 그림에 나오는 집의 위치와 비슷하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또 이춘제의 집을 그린 정선의 <오이당도>에 시를 썼는데, 이 시의 내용이 <인왕제색도>의 풍경과 흡사하다 합니다. 하지만 이도 이춘제가 겸재에게 주문한 그림은 <오이당도>였으며, 다른 그림과 달리 <인왕제색도>를 주문했다거나 소장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인왕제색도>는 겸재의 손자 정황에게 전해졌다가 1790년께 당시 권력가였던 심환지에게 준 것으로 보아 주문받은 그림이 아니라는 설이 있습니다.

 

 

 

3. 비가 개인 순간의 흥(상쾌함)을 나타내고자 정선 자신의 삶의 터전을 그린 그림이다.

 정선은 경상도 하양 현감을 마치고 1727년에 옥인동으로 이사했다.

자신의 집과 뒷산인 인왕산을 애정을 담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집은 정선이 자신의 집을 그린 그림 <인곡정사>와 흡사하다고 합니다. 인왕산 자락을 그린 <수성구지>에도 이와 비슷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합니다. 이 설의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그림을 넘겨받은 심환지가 이 그림에 붙인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당대 사람인 심환지가 이 집을 겸재의 집으로 인식했다는 설입니다.

 


 

 이 3번의 가설을 제시한 분은 미술사가 홍선표 씨입니다. 이 분은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에 <인왕제색도>(책 p84)을 집필하셨습니다. 갖고 있는 책은, 2007년에 초판 1쇄된 책으로 새로운 발견이 없지 않은 이상 내용이 수정될 일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이 책을 잠깐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 회화 공예편

 본 책 p86와 p88에 있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첫 번째 가설인 이병연과의 우정을 언급하지만 저자는 이 그림은 정선이 자신의 제택인 인곡정사와 그 주봉인 인왕산의 경관을 기념비적 와유물로 남기기 위해 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며 가설을 제시합니다.

 그 이유로, 정선은 현령직에서 물러난 후 명문가 부럽지 않게 집을 중축 + 외조부의 '풍계유택'과 자신의 '인곡정사'를 그려 합철해 그동안 벌열가에 비해 차별되어온 명문 의식을 드높게 표명한 바가 있다는 것으로, <인왕제색도>는 그 연장선상에서 속진을 씻어내듯 비가 쏟아진 후 인왕산의 우렁찬 기세와 비안개 걷히는 인곡정사의 유연한 운치를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합니다.

 더 짧게 한 줄로 요약해보자면, "열심히 일한 당신 플렉스! 하고 나니 별거 없더라..."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세 번째 가설인 "자신의 삶의 터전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책에서 나온, "속진을 씻어내듯"이라는 부분입니다. 정선은 말년에 정선은 주역을 공부했다 합니다. 사서삼경에도 읽는 순서가 있는데 "대학 → 논어 → 맹자 → 중용 → 시경 → 서경 → 주역"으로 그가 읽은 것이 주역입니다. 주역은 흔히들 '점占'보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우주의 철학에 대한 이치를 깨달아 흉운을 피하고 길운을 잡으려는 세상의 지혜라 볼 수 있습니다.

 주학을 말년에 공부했다는 뜻은 그가 마지막까지 선비 정신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정점을 찍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녹인 그림을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여 자신의 생애 전체를 그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그 현재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생生의 시작부터 앞으로 남은 자신이 바라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갓집에 와 어릴 때부터 살게 되어 그 근처에서 스승을 만나 수학修學하고, 말년에도 그곳에 가서 살았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만큼이나 가장 특별한 공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왕산 仁王山에는 '어진仁 임금王'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 君師父一體;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같다 라는 말이 있듯이, 그에게 있어 '인왕'산은 그 모든 것을 아울렀던 공간이 아닐까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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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박] 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_④ 떨어지는 잎사귀에 해와 달 (tistory.com)

 

[국박] 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_④ 떨어지는 잎사귀에 해와 달

*국박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비공식 준말입니다. 저로 비롯하여 많은 분들께서 '국박' 혹은 '국중박'이라고 부릅니다.  제 전공은 서양화입니다. 최대한 아는 내용과 약간의 검색을 통해 알게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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